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역사 (문단 편집) ==== 타카하타와 미야자키의 관계 ==== [[1968년]], '토에이 동화'의 제 1탄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연출한 다카하타와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를 나와 A프로덕션(現. [[신에이 동화]])이나 [[TMS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회사들을 옮겨 다니게 된다. 그러다 '[[스튜디오 지브리]]'로 독립하게 되는데 그 사이 두 사람은 TV용,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 두 애니메이터는 분명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형성해 나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서로에게 좋은 비판가이자 응원자였다. 흔히 다카하타는 이론적이고 비판적인 데 반해 미야자키는 이론보다는 감성과 실력으로 작품을 그려 나아간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극과 극은 통한다|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가령, 다카하타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년]] 상영)과 미야자키의 《[[이웃집 토토로]]》([[1988년]] 상영)의 '숲'의 묘사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과 이웃해 있는 [[숲]]을 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미야자키의 《이웃집 토토로》가 1950년대 일본 시골의 정겨운 숲으로 묘사되어 있다면 다카하타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숲은 아름답지만 현대의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다카하타의 작법은 미야자키에게 영향을 미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같이 숲과 [[환경]]을 다룬 《[[모노노케 히메]]》에 의식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그 타카하타가 2018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 미야자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